음악.예술론
물랭 당데를 찾아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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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 19. 10:57
![]() 예술가의 삶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예술가의 삶을 어떤 특별한 것으로 간주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성인이 된 일반인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휴식을 취한다. 어떤 삶이든지 모두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그러나 예술가의 삶이 일반인의 삶과 우선 다른 점은 ‘창작’의 의무를 짊어지는 데 있다. 이것은 단순한 생산성과는 다르다. 단지 작곡가이거나, 소설 또는 시를 쓰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연주를 하는 연주자에게도,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시나리오 작가에게도 창작성이 요구된다. 자그마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창작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예술가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의 음성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예술가의 삶은 때론 규칙과 질서에서의 이탈을 전제한다. 예술의 발전을 위해 기울이게 되는 기본적인 노동의 양은 분명 필요조건이지만, 단순한 노동의 축적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물론 여기서 재능의 문제도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재능의 상당부분 역시 열정이나 노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음악이 되었든, 문학이 되었든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아픔의 시간이 창작성을 어느 정도 발전시켜준다고 믿는다. 이 아픔의 시간은 일종의 터널이다. 예술가는 언제나 이 터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에 위치한 물랭 당데는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예술가에게 휴식과 위안의 공간인 동시에 창작의 의욕을 새롭게 북돋워 주는 특별한 곳이다. 물랭 당데는 많은 음악인들이 특별한 곳, 아름다운 곳으로 꼽으며 꼭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이곳은 파리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으로 노르망디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앙들리Andelys와 루앙Rouen 사이에 있다. 자동차로는 파리로부터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며, 기차를 타고 갈 경우에는 파리의 생-라자르 역에서 루앙 방향 기차를 타고 발 드 훼이Val de Reuil역에서 내리면 된다. 세계의 대도시 가운데 그래도 파리는 잘 보존되어 있고, 공해가 심각하지 않다고 해도 역시 대도시는 대도시다. 소음과 공해, 특히 메트로 내부의 악취와 나쁜 공기는 시민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일단 파리를 벗어나 인근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면 아름다운 자연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새로운 생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주말이면 파리를 벗어나기를 좋아한다. 물랭 당데 역시 맑은 공기와 조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연주회와 연극 등을 할 수 있는 극장, 연주회를 할 수 있는 아담한 공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연주회 장소로도 사용되는 카페, 호텔과 레스토랑 곳곳에 놓여 있는 10여 대의 피아노, 세느강의 줄기가 연결되어 흐르는 호텔 바로 앞의 강 줄기, 지금은 그 기능을 마치고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아름답게 잘 보존되어 있는 물랭 당데의 상징인 물레방아 등이 이곳을 작고 아담하지만, 특별한 곳으로 느끼게 만든다. 물랭 당데는 대략 12세기 경에 세워졌으며, 강물의 낙하를 이용하는 낙하식이 아닌 물레방아 아랫쪽의 강물의 흐름을 이용하는 방식으로는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랭 당데는 지금은 프랑스의 역사적인 기념물로 선정되어 있다. 이곳의 대표인 쉬잔 리핀스키가 1957년에 물랭 당데에 오면서 이곳의 역사는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물랭 당데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과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이곳을 예술적인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예술가들이 그들의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1962년에 물랭 당데는 공식적인 문화공간으로 탄생했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그리고 문화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정원으로 둘러 쌓인 이곳은 약간 떨어진 주위 공간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수리를 거쳐 현재는 호텔로 이용되는 건물이 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원의 한 귀퉁이에는 극장이 들어서 있다. 이 극장은 다양한 형태의 공연과 모임들을 소화할 수 있다. 1983년 이후로 음악은 물랭 당데의 주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연중 음악회와 음악과 다른 분야와의 만남, 그리고 페스티벌들이 진행되고 있다. 매년 여름에는 전 세계에서 온 교수진과 학생들로 구성된 국제 음악 아카데미가 진행된다. 1998년 이후로 물랭 당데는 프랑스 문화예술인들의 공식적인 만남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영화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쎄씨Ceci’ 프로젝트를 통해서 젊은 영화인들에게는 새로운 작업의 모색 공간이 되었다. 물랭 당데에서는 모든 것이 편안하고 자유롭다. 사람들의 휴식과 작업을 위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또한 이곳을 찾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아침은 물랭 당데 중앙에 위치한 카페에서 먹고 싶은 만큼 커피와 바게트를 접시에 담아 먹는다. 점심 식사 시간까지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작업에 몰두한다. 이곳 저곳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만 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람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오리들의 울음소리가 오히려 더 크다. 점심은 중앙식당에서 먹는데 뷔페식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온 작가, 영화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온 작곡가, 며칠간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기 위해 온 피아니스트, 단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친구들의 권유로 물랭 당데에 들린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큰 테이블에 서로 섞여 앉아서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식사한다. 오후 시간도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저녁에는 매일 크고 작은 연주회가 열리는데, 식사는 이 연주회 직후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휴식을 겸해 연주회를 감상하러 모인다. 작곡가이자 플루티스트의 연주 이후에 즉흥연주 시간이 있어, 청중으로 왔던 피아니스트가 자연스럽게 무대에 올라 즉흥연주를 들려주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좀더 긴 대화가 오고 갔다. 이들의 저녁 식사에 빠질 수 없는 와인이 사람을 더욱 수다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수다를 통해 긴장을 푸는 법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가족 단위로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들도 휴식,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 다른 감각의 예술적인 경험을 동시에 즐긴다. 매달 작가가 바뀌는 미술 전시와 물랭 당데가 마련하는 연중 음악회와 페스티벌 프로그램도 흥미롭지만,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음악회나 만남이 주는 흥미로움도 만만치 않다. 완성이나 완벽성이라는 이루기 힘든 목표 때문에 잊고 있었던 자발성이나 실험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과거에 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이제는 소설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한 중년 남자는 이곳에서는 보름만에 소설 한 편을 완성할 수 있는 어떤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물랭 당데보다 더 자연환경이 좋은 남부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도 이곳을 찾는다. 물랭 당데에서는 예술가와 예술가, 애호가와 예술가, 또한 애호가와 애호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만난다. 이들은 물랭 당데의 프로그램에 따라, 혹은 프로그램과 상관없이 며칠 동안 이곳에서 지낸다. 물랭 당데에서의 만남은 이들 예술가들의 다른 삶 속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활동의 에너지로 작용하기도 하며, 한 번 물랭 당데를 찾은 이들은 끊임없이 이곳을 찾게 된다. 사람들을 예술 속으로 더욱 이끄는 특별한 힘이 이곳에 잠재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랭 당데 홈페이지 www.moulinande.asso.fr 글 : 김동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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