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poem

여행기 - 방랑부부 자전거여행

keyword77 2013. 3. 5. 22:54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서는 좀처럼 목적지를 정하고 이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악 국가여서 그런지 끝도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죠. 처음엔 하루 80km정도 이동을 목표로 잡았었지만, 실제로 달리다 보니 50km 정도만 이동해도 기절할 정도로 힘들어서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경관,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리고 자유로운 캠핑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자전거로 여행하기엔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신랑은 자전거 여행 상품으로 추천하고 싶다고까지 말했는데,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오는 직항 비행기는 없다더군요.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푸른 나무, 아름다운 성당들, 그리고 친절한 조지아 사람들이 있었죠. 생각보다 동양인이 드문 지역이라 저희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하는 바람에 민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따뜻한 관심이라 느껴졌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자전거로 여행하는 유럽 친구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 중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조금 특이했던 프랑스인 안토니는 주로 산악 지형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청년이었는데, 머리에 큰 상처가 있어 이유를 물으니 예전에 산에서 헬멧을 안 쓰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 지는 사고를 겪었다네요. 그 사고로 큰 머리 수술을 받았다며 저희에게 헬멧을 잘 쓰고 다니라는 조언을 유쾌하게 해주는데, 제 눈엔 그런 안토니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만약 저라면 그런 사고를 겪은 후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안토니와의 만남도 그렇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자전거 여행자들은 모두 친구 같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스쳐 지나기만 해도 새로운 힘을 얻는 듯하거든요.


일단 우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아르메니아를 향해 달렸습니다. 트빌리시에서 아르메니아 국경까지는 반나절 정도였지만, 국경 비자 때문에 입국 사무소에서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그늘도 없고 자전거까지 끌고 다녀야 되는 상황이라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제 앞에 있던 이란 사람이 '주몽'을 외치며 대단한 드라마라고 칭찬해 주어 괜스레 뿌듯해졌습니다.
아르메니아 계곡엔 캠핑하기 좋은 장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마음에 드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한 3일 정도 쉬어가기로 했죠. 그렇게 계곡에서 빨래도 하고 책도 보며 여유롭게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한밤중에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비가 쏟아졌습니다. 게다가 텐트 타프를 제대로 치지 않고 자전거에 걸쳐 놓은 상태라 비가 텐트 안으로 조금씩 들어왔죠. 가지고 있던 우비로 틈을 막고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데, 속절없는 비는 점점 더 많이 오기만 했습니다. 바로 옆이 계곡이라 혹시 갑자기 물이 불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너무 늦은 밤이라 어떻게 해야 되나 막 머릿속에 별의별 상상을 하며 신랑과 이야기 나누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보니 새벽 3시 정도였는데, 비는 그치고, 생각보다 계곡에 물도 많이 안 늘었고, 텐트 상태도 괜찮았습니다. 다시 맑아진 하늘 아래 우비랑 수건 그리고 침낭을 말리며 어젯밤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서로를 웃으며 놀렸어요. 뭐 솔직히 말하면 신랑이 일방적으로 저를 놀렸지만… 그래도 둘 다 무사히 살아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랑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보다 더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티 안내고 잘 토닥거려줘서 이런 위기의 순간들도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례반으로 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고도 1,000m이상은 매일 넘었던 것 같아요. 어떤 날은 2,000m를 넘는 날도 있었죠. 그러다 보니 종아리에 근육이 생기고 살도 빠지고 얼굴은 점점 까무잡잡해졌죠. 열량 소비가 많아져서 그런지 자전거를 조금만 타도 금세 배가 고파지곤 했어요. 어떤 날은 아스팔트 도로에 앉아 굶주린 배를 물과 빵으로 채우고, 또 어떤 날은 감자에 소시지만 구워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요리하다 망친 스파게티도 주저 없이 먹고, 배가 고프다 보니 그냥 아무거나 잘 먹게 되었죠. 저야 원래 아무거나 잘 먹었지만 신랑은 입맛이 제법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요즘엔 배만 채워주면 마냥 신나하네요.


아르메니아는 낙농업이 발달된 나라라 우유와 치즈 그리고 소시지맛이 아주 좋더라고요. 대부분의 좋은 치즈와 우유, 소시지는 조지아로 수출된다고 하는데, 소를 키우는 일반 가정 집은 직접 치즈를 만들어먹기 때문에 수출되는 것들만큼이나 양질의 제품을 먹을 수 있다네요. 그런데 사실 저희 취향은 아니었어요. 너무 짜고, 특유의 냄새 때문에 많이 먹을 수가 없었죠. 아르메니아에서 만난 쿠르트 족인 '까모' 덕분에 맛을 보았지만 두 번은 힘들 것 같았습니다.


아! 까모는 저희가 해가 저물 때까지 캠핑할 곳을 못 찾아 길가에 서 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인데요. 도움을 요청하니 캠핑카처럼 개조해 놓은 트레일러를 선뜻 빌려줬습니다. 저희가 괜찮다고 그냥 주변에 텐트를 치겠다고 말하니, 늑대가 나오기도 하는 지역이라 밤에는 자신의 큰 개를 풀어놔야 되기 때문에 위험하다더군요. 캠핑하면서 늑대가 나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무서워져서 얼른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에 우리를 초대해 문제의 치즈를 줬는데, 맛없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맛이 좋다고 말하니 잔뜩 꺼내주는 게 아니겠어요. 저희는 괜찮다고 말하고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죠. 현지인 집에 이렇게 초대 받은 적이 없어 약간 긴장해 있었는데, 거기에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보디 랭귀지로 소통까지 하자니 더 힘들더군요. 특히 까모는 아무런 말도 없이 오직 보디 랭귀지로만 표현하려고 해서 더욱 힘들었죠. 사실 웃기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집의 다섯 아들들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는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특히 둘째가 복싱으로 많은 메달을 땄다고 자기를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할 때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모두 웃음 바다가 되었답니다.


까모의 식구들은 까모의 부모님과 부인 그리고 다섯 아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이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러시아어, 아르메니아어, 쿠르트어, 아랍어를 하신다며 어머니가 똑똑하다고 자랑하더군요. 그나마 식구들 중 약간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어머님은 까모가 술을 많이 마셔 걱정이라며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니 세상 어디에 가든 어머니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그의 부인은 청소하고 밥을 짓느라 제대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커피 마실 때만이라도 같이 하자고 불렀는데, 5분도 채 안 되어 설거지를 하러 가더군요. 마치 우리나라 옛날 드라마에서 나오는 살림만 하는 며느리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어요. 그리고 독수리 오형제 같은 다섯 아들들은 제 자전거를 탐내며 한번 타보고 싶다고 가지고 가서는, 후미등을 반토막내기도 했죠. 자기들끼리 수리 해보겠다고 몰래 고치고 있다가 저에게 딱 걸렸는데, 놀람과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아빠에게 말하지 말아달라며 본드로 붙여주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후미등 상태를 보니 그냥 전기 테잎으로 붙여서 써도 될 것 같기에 제가 수리한다고 하니깐 손가락 하나를 입술 위에 갖다 놓으며 꼭 비밀을 지켜달라고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습니다.


까모의 뒷집에 사는 아주머니도 저녁과 아침에 저희를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해주시며 자신의 옛날 사진과 사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참 신기하게 그 아주머니와 대화할 때는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행동이나 눈빛만으로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더군요. 까모네와는 달리 바닥과 벽이 흙으로 되어 있는 허름한 집에는 침대 두 개와 테이블, 그리고 낡은 텔레비전 한 대가 있었습니다. 찻잔도 딱 세 개뿐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아주머니께 무엇인가 해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가지고 다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아들과 아주머니 사진을 찍어 드리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참 오랜만에 찍는 사진이라며 말이죠.


어느새 늦은 밤이 되고 트레일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까모가 찾아와 총을 보여주며 걱정 말고 자라며 늑대가 내려오면 개들이 싸울 것이고 자기가 총으로 늑대를 쏘아 죽일 거라는데, 왠지 총 들고 있는 까모가 더 위험해 보였던 이유는 뭘까요? 어쨌든 그날 밤은 화장실 때문에 밖으로 나가려는데 큰 개들이 돌아다녀서 계단 위에서 볼일을 본 것 말곤, 아무일 없이 지나 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뒷집 아주머니께서는 우리를 불러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며 마스카라와 머리띠를 챙겨주셨는데, 아마도 줄 것이라고는 이것뿐이라는 내용이신 듯했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있는지라, 머리띠만 받겠다고 하니 꽤 섭섭해하시더군요. 그래서 이걸 바르고 자전거를 타면 검은 눈물 흘리게 된다고 보디 랭귀지로 표현을 하니 그제서야 다시 웃으셨습니다. 까모의 집을 나설 때는 하루 만에 뭔가 많은 것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까모는 아침까지 먹고 가라고 권했지만, 저희는 후다닥 떠나왔습니다. 왠지 아침까지 얻어먹으면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또 한 번 현지인의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삼 일 정도 샤워를 못해 찝찝하기도 했고 밀린 빨래도 해야 되서 숙소를 찾기로 마음 먹은 날, 아슛을 만난 것이죠. 굉장히 훌륭한 영어 실력에 놀라고 그리고 잠을 그냥 재워준다고 해서 더 놀랐습니다. 택시 미터기 관련사업을 하는 아슛은 한국인 친구가 있어 한국 사람은 다 친구라며 우리를 초대했는데,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정말 샤워에 목말라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가 자신의 집이 아파트라고 말하는 순간, '아 그럼 샤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그런데 그의 집은 20km는 더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솔직히 그 날도 산을 넘어 달려온 탓에 힘이 쭉 빠진 상태였는데 이미 약속을 한 터라 남은 힘을 다해서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건물은 곧 쓰러질 것 같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욕실은 고장 난 상태로 지저분했고, 게다가 당분간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1층 공동 수도에서 물을 떠와서 씻어야 된다고 하더군요. 샤워는 물 건너간 것이었죠. 신랑과 저는 이런 안 좋은 상황에 우리를 왜 초대한 거냐며 중얼거렸지만, 아슛은 저녁 식사를 직접 만들어주고 그 지역의 치즈를 맛보여 주며 우리 기분을 맞춰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아슛은 한국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신랑에게 직업이 뭐냐고 하기에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고 하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영어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우리는 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피곤해지고 영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아슛의 숙소에서 나오는 길에 그가 말하더군요. 일전에 자기가 미국인에게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밥을 달라고 말을 하면 밥을 줄 거라고 말했더니 믿지 않았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또 말하더군요. 정말 아르메니아에서는 누구든 선뜻 호의를 베풀테니 걱정 말고 여행하라고 말이죠. 저희는 그 말을 믿는다고 말해줬어요. 아르메니아인들이 친절한 건 여행 내내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너무 아름다운 땅이 있어 뒤에 숨겨 놓으시고 가지고 있는 땅을 전부 나누어주셨는데, 가장 늦게 어슬렁거리며 온 남자가 하느님께 땅을 달라며 손을 내밀자 고민하시다가 그 남자에게 내어주신 숨겨놓았던 땅이 조지아라." 조지아 사람들이 했던 말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해주었습니다. 도시라고 하면 교통 체증이 심하고 삭막함이 넘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저희였는데, 크고 화려한 조지아 정교회 건축물들과 푸른 나무들, 거리의 작은 조각상 하나까지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해 만들어진 듯한 트빌리아는 이런 선입관을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사가레조'라는 마을에서 캠핑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아름다운 조지아 정교회를 보고 관리인 아저씨께 혹시 이곳에서 캠핑을 할 수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하지만 관리인 아저씨는 거절하시며 대신 마을 안에 있는 학교로 가보라 하시더군요.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 캠핑할 곳을 찾는 저희는 '쇼레나'라는 현지인 친구와의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시골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쇼레나는 능숙한 영어로 학교 관리인을 찾아주고, 우리가 텐트를 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죠. 덕분에 쇼레나 집에서 바로 보이는 학교 공터에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라쌰라는 남자 아이가 자기네 집으로 가자며 오늘 밤에는 자기 집에서 묵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솔직히 귀찮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피곤했기 때문에 다시 텐트를 접는 것도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웃으며 거절하고는 반대로 우리의 텐트로 그 아이를 초대했습니다. 그러자30분 후 랴쌰는 친구들과 조지아 전통 술인 쟈쟈와 와인 그리고 과일을 잔뜩 들고 나타나더군요. 그리고 쇼레나도 나와서 조지아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축제를 열게 되었습니다. 쇼레나와 라쌰 모두 친구 사이였는데, 라쌰도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서 우리의 여행이야기에 눈동자가 반짝이더군요. 거기에 저희 신랑의 영어 교실까지 열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재미있는 한 때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돌아가고 신랑도 '쟈쟈'라는 독한 술에 취해 잠들어버렸습니다. 뒷처리는 저와 쇼레나의 몫이었고, 주변을 정리한 후 저도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새벽, 쓰레기 봉투에 남은 베이컨 조각 냄새를 맡은 동네 개들이 저희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소란을 부려서 정신을 잃은 남편 대신 텐트를 지키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네요. 음식냄새가 나는 쓰레기는 항상 텐트에서 먼 곳에 놔두었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해 대충 정리했더니 이런 일이 발생했네요.


그렇게 다음날, 숙취가 제대로 깨지 않은 신랑과 잠을 제대로 못 잔 저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한 조지아 아저씨께 가볼 만한 곳이라 추천 받은 '시그나기'로 출발했습니다. 유럽을 가보지 못한 저희에게 그곳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작은 유럽풍 마을 그 이상이었습니다. 저 멀리 코카사스 산맥이 병풍처럼 있고 마을 밑으로 펼쳐져 있는 평야, 그리고 무엇보다 저렴한 숙소 에 한 삼 일 정도 쉬어가자 생각했습니다. 마을 초입에서 반가운 한국분들도 만났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시면서 저희 자전거의 태극기를 보았다던 그 분들은 대단하다 칭찬도 해주시고 무엇보다 음식을 챙겨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나니 집에 있는 엄마 생각도 나더군요. 김, 멸치, 고추장, 김치 등을 챙겨주셨는데 트빌리시 숙소에 라면도 있는데 그것까지 못 챙겨 오셨다며 아쉬워하시기도 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의상 괜찮다고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면서도, 제 손은 그 음식들을 이미 덥석 받고 있더군요.


그리고 저희가 머물고 있던 숙소 주인장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아 근사한 저녁 대접도 받았습니다. 그날 폴란드, 이스라엘, 조지아, 러시아 각 나라의 생일 노래를 들었죠. 저희도 축하곡으로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불렀습니다. 각 나라의 생일 노래를 듣다 보니 이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가서 조금 더 자신 있게 불렀던 것 같아요. 우리가 부른 노래는 한국을 대표하는 생일축하곡 이 마땅히 생각이 안 나기도 했고, 평소에 부르는 생일축하곡은 너무 흔한 외국곡이어서 선택한 곡이었는데, 모두 반응이 좋아 다행이었습니다.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한국을 대표하는 축하곡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진 것이 많이 없는 여행자이다 보니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그런 것을 더 선물하고 싶더군요. 오늘 서로 노래 한 곡씩을 나눈 것처럼 진심이 느껴지는 그런 것들 말이죠.


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에서 신랑과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몸이 힘들고 지치다 보니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게 되더군요. 길을 좀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신랑 탓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괜스레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싸울 때면 제 감정을 최대한 감추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길거리 한복판에서도 누가 우리를 보든 말든 상관없이 큰소리 치며 싸우다가 또 그냥 막 웃어 버려요. 솔직히 정말 말도 안 되는 것들로 싸우다 보니 싸움의 내용도 초등학생들처럼 유치하거든요. 그날 역시 유치하게 싸우다 결국 잠이 들었죠. 그리고 다음날 마을 교회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을 보게 되었는데, 엄숙하게 진행되는 결혼식을 보니 신랑에게 많이 미안해졌습니다. 우리가 왜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신랑에게 사과를 했어요. 그러자 신랑도 그동안 힘들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서로에게 쌓였던 앙금을 풀어낸 우리는 '고리'라는 지역에서 기차를 타고 터키와 조지아 국경마을인 '바투미'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바다를 만났어요. 흑해를 보고나니 기분도 제법 새로워졌죠. 다음 나라인 터키로 떠날 준비를 하는 지금, 그곳은 어떤 나라일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얼마 전 만난 영국인 자전거 여행자의 말에 의하면 이곳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라는데, 터키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까요?

국경을 넘어 새로운 나라로 가는 것에 대한 설렘은 늘 즐겁고 짜릿합니다.







위 기사는 바퀴 Vol.022의 '방랑부부 막무가내 여행기' 기사 전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