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여유로운 한때를 담은 그림이다. 식사를 마친 후 차한잔, 아니면 그저 차한잔 마시기 위한 피크닉.
피크닉을 우리말로 옮기면 소풍인 것을. '소풍'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학창시절 학업에서의 공식적인 해방 날로만 기억된다. 소풍날
의례이 준비하는 김밥. 가방 가득 담고 가는 과자. 사탕, 쵸코렛......싸가지고 가서는 다 먹지도 못하면서 왜 그리도 욕심을 냈던지.
요즈음이야 등교가방으로 배낭을 흔하게 매지만 내 학창시절만 해도 배낭이란 소풍갈 때나 매는 피크닉용이었다. 비록 교복 자율화의 혜택을 입으며
자유롭게 입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애매모호한 자율성에 더욱 욕구불만만 초래했을 뿐. 결국 요즈음 대부분이 다시 교복착용을 실시하고 있지
않은가. 소풍날이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혜택은 바로 의복 자율화였다.
모자도 쓰고 반바지도 입고 원색의 영자가 써있는 발랄한 옷도 입어보고. 그게 결코 멋스럽지는 않건만 단지 평소에는 입어볼 수 없는
것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마냥 흡족하기만 했던 때였다. 막상 편한 옷으로 뛰어 놀 수 있어야 하거늘 못 입던 옷을 입고가 흙 묻을라, 음식
흘릴라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나의 추억 속의 소풍이다.
물론 이후 야외나들이를 한적이 있지만 그걸 굳이 소풍으로 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기억 속의 소풍은 학창시절 유일한 자유와
해방의 의미를 가진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뇌리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을 보자! 아마도 이들에게는 이런 소풍, 피크닉이
일상적인 것 같다. 어쩌면 일상 속에서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준비하는 것 같다. 황금빛의 잎사귀는 금새 부서져 떨어질 듯 말라
있지만 잎사귀 한점 바닥의 음식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바람 한점 없는 듯하다. 천고마비의 가을 햇살을 밤나무 밑으로 피해 한상 벌린
음식상은 꽤 익숙해 보인다.
야외에 나와서 뚜껑에 대충 먹고 사발에 떠 마시는 우리식의 임기응변이 안 보인다. 커피 잔과 에스프레소 잔의 격식까지 갖춘 것 보면
아마도 이런 소풍이 생활 속에 자라 잡은 듯 보인다. 모자와 꽃 장식을 포함해 매우 화려한,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무척이나 불편하고 어리석은
의상이지만,. 장갑까지 끼고 커피 잔이 아닌 에스프레소 잔에 정식으로 마시는 오른쪽 여인에겐 꽤 어울리는 사뭇 선선한 추위방지를 위한 개인
방석에 스카프, 담요까지 준비되었다.
코끝과 볼이 불그스레 상기되었지만 그녀는 먼 치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져 있다. 중심에 비스듬히 누운 남자 또한 모자와
꽃장식을 빼놓지 않았고 흰 스카프에 흰 구두를 입은 멋쟁이이다. 그를 향해 쏟아진 병들은 아마도 한차례 마시고 난 와인 병들이 아닐까. 주변의
포도와 햄, 치즈로 어렵지 않게 와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와인 후의 커피한잔. 흥건히 알딸해진 기분에 이 남자가 바라보는 쪽의 풍경은
가열중인 은주전자에 비추어지는 풍경으로 읽을 수 있다. 듬성듬성 자란 나무들과 여유롭게 가득한 하늘 풍경. 감상하는 그림 속의 복잡한 풍경과는
달리 그림 속 인물들이 보는 풍경들은 꽤 한적한 풍경들인 것이다.
중심에 있는 3명의 인물들을 빼고도 구석구석 인물들이 보이지만 훑어보다 눈이 멈춘 곳은 왼쪽 하단의 흑백의 줄무늬 천 조각과 레이스
검은 천 끝으로 보이는 구두. 바로 여인의 다리다. 그 쪽에 꽤 늘어진 여인이 있음을 감지 할 수 있다. 상당히 과감한 구도로 그렸음을 읽을 수
있다. 차라리 그 부분의 인물을 그리지 않는 것이 상식인 것을 굳이 이렇게라도 담은 이유가 뭘까. 마치 돌아가는 영상화면의 한순간을 포착하듯
뒤에서 담소를 나누는 인물들까지도 불안할 정도로 자르고, 몸을 기울려 시럽을 따라주는 여인의 포즈까지 그대로 담아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떠오르는 궁금증 2가지.
왜 화가는 이것을 그렸을가.
우리에겐 왜 이런 생활문화가 어색하게만 느껴질까.
이 그림은 1860년대에서 1890년대 한창 프랑스 인상주의가 유럽을 풍미할 때 그려진 그림이다. 당시 미술사에는 큰 혁명 요인을
2가지 꼽는데 한가지는 1838년 사진의 발명과 보급이고 또 다른 한가지는 1840년 안료 제작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다. 사진의 발명으로
화가들은 더 이상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에 위기를 느꼈고 그림을 왜 그리는가,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화가들은 빛의
변화에 따른 변화에 눈을 떴고, 같은 형태도 색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것에 매료되어 야외 풍경에 몰입하게 된다.
때맞추어 돼지 방광주머니에 싸서 가지고 다녀야 했던 물감이 튜브로 개발되고 화가가 직접 섞어서 다양한 색을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의 다양한
색들이 개발되어 편리함을 제공함으로써 화가들은 간편하게 야외에서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이전에 풍경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야외에서 스케치 한 것을 실내에 와서 완성시켜야 했던데 반해 직접 야외에서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편리해진 교통의 발달과 화가들은 어디든 다닐 수 있었고 어느 곳에서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진실된 시간으로 담게
된 것이다.
비록 사진기의 발명과 보급은 화가들에게는 자극과 위기감을 던졌지만 결국 화가들은 그 사진기를 적절히 자신들의 작업에 활용을 하기도
하는데.....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보면서 그리기도 하고, 사진을 찍다보면 어쩔 수 없이 사진속에 다들어오지 못하고 잘리는 사물과
인물들은 그대로 그림 속에 그려보기도 한 것이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프랑스를 기점으로 인상주의는 인근 유럽 국가에 곧 영향을 미쳤고 영국화가가 그린 이 '피크닉' 그림도 당시
유행처럼 풍경을 그렸지만 영국인들 나름의 귀족적인 품위가 느껴지는 풍속화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인물들을 잘린대로 그대로 그린
것으로 보아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후 그 사진을 보며 그대로 그린것일 수도 있고, 비록 야외에서 직접 그린 것이지만 사진의 영향에 매료된 작가가
인상주의 화가가 그랬듯 사진 기법을 그대로 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인물들은 전혀 화가나 사진 혹은 그림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
담겨져 있다.
꾸미거나 연출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이 그림 앞에서 우리는 단지 부러움이나 거부감으로 그칠 것인가. 휴가를 얻어서나
겨우 떠날 수 있고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나설 수 있는 야유회가 결국 더욱 피곤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 않던가. 언제나 떠날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도 마음의 휴양지를 찾을 수 있는 피크닉 ! 가까운 자연에서 멋스럽게 차 한잔을 즐길 수 있는 삶. 때마침 피어오르는 봄.
봄을 느끼며 '보자 보자' 하면서도 시간내기 어렵다는 핑계로 미루었던 사람들 모아 그저 차 한잔 마셔보는 시간, 오히려 특별한 이벤트가 될 것도
같다
출처: 엠에스엔 물감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