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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파 회화에 대하여

keyword77 2005. 8. 7. 12:52

표현주의는 1905년에 구성되어 1913년에 해체된 다리파와 1913년 출간된 연감의 이름을 딴 청기사파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야수파도 표현주의의 특성을 지니고 독일 표현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하여 1918년까지 계속된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베를린에서 활발히 전개된 다다운동, 바우하우스, 그리고 표현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신즉물주의가 미술계의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다. 이렇듯 표현주의 회화는 전쟁 전에 절정을 이루었으나 문학이나 건축에서의 표현주의는 그 후에도 전개되었다.

 

 


다리파 (Die Bruke 1905 - 1913 )


독일 중 북부 중심의 다리파는 처음 드레스덴에서 키르히너,헤켈,로틀즉뜨등 20대의 젊은 건축학도들이 모여 결성했다. 이들은 안이한 중산층의 도덕의식,물질문명에 반발하고 새로운 인간의 시대를 지향하는 사회 개혁적 의지를 담고 특히 대중 사회에서 개인의 갈등과 고립 그리고 현대 인간의 심리적,사회적 의식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미술은 모두 혁신적이고 격동하는 요소들을 연결하겠다는 의지에서 '다리파'로 명명했다. 그래서 순수한 미술인들의 공동체를 동경하여 공동생활을 하고 공동 전시와 공동작업을 했다. 주로 도시나, 거리, 누드, 퐁경속의 누드, 카바레, 회가의 스튜디오, 창녀와 고객등의 20C에 생겨난 새로운 도심의 소재들로 개인,종교,성,군중 사회속의 심리적 압박감을 표현했다. 특히 독일 전통으로서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 이것은 독일 낭만정신에 그 근원이 있으며 그 의미는 이상향이나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내포한다. 이와같은 주제는 열정적이고 강렬한 색채, 동요하는 형태 왜곡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드레스덴 시기는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원색, 구성의 영향을 보이지만 그다지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베를린시기에는 선이 딱딱하고 날카로워지며 화면구도도 복잡하게 변화되었다. 한편 중세미술을 독일미술 정통성으로 여기고 뒤러,크라나흐등에 주목하여 판화에 관심을 갖는다. 키르히너는 목판, 로틀루프는 석판, 헤켈은 목각을 하였다.

 

 

*********** 키르히너 ( 1880 - 1938 )

 

 


다리파의 초창기부터 핵심인물로서 초기에는 신인상파적 영향, 두터운 화면효과에 보이는 고흐의 영향이 특징을 이루었으나 점차 다리파 특유의 주제인 도시풍경,누드등의 다리파의 주소재에 주관적인 색채가 사용되고 색면을 통한 평면화의 구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도시의 움직임이 빈번하는 군상이 밀집한 거리풍경들 강렬한 원색대비와 유동적인 선으로 야수파와 유겐트스틸의 강한 영향이 아직 남아있는 초기단계를 거쳐 베를린 시기의 도시풍경은 <거리,베를린> 정착된 세계를 보여준다. 찌르는듯한 V.A.Z.N.M자와 같은 형태의 표면구조를 이루고 붓의 방향도 여러번에 걸쳐 대각선의 빗금으로 뾰족하게 처리되어 얼굴과 다리형태를 강조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강조한다. 키르히너는 조형양식 자체로서 작품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우아하고 세련된 남녀들은 극적인 축조법으로 비례가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화려함과 형태왜곡은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그러나ㅡ 그의 누드는 종전의 누드에서의 수줍음따위를 없애고 도발적이고 성욕이 넘치는 여인의 왜곡되어 풍만해진 신체와 자태이고 그의 근대적인 시선과 다른 남성중심적 사고의 여성관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다리파는 강력한 주의와 발언과 표준에도 불구하고 일괄되지 못한점이 많이 발견될뿐 아니라 체계가 떨어지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다리파가 꿈꾸던 새로운 본능적관계가 진정한 새로운 관계 정립의 인간과 자연, 성의식이 아닌 여전히 남아있는 남성우월의식이 보이는 있다는 사실을 「누드」등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에곤 쉴레 ( 1986 - 1918 ) 코코슈카 ( 1886 - 1980 )

 

 


이 두사람은 독일 출신이 아닌 빈의 출신이나 비엔나가 지닌 도시적 성겨과 퇴폐주의를 옹호하는 분위기에 반하여 표현주의작가들과의 만남으로 다리파작가들과 흐름을 같이 하게 된다. 쉴레는 Die Aletion에 글이 실리고 「존더분트」전에 초대되면서 알려졌다. 매우 빠른 속도의 연필, 펜, 드로잉에 뛰어났고 마르고 뼈가 앙상한 인물 남녀의 성기 음모등의 거칠 것 없는 표현주의 누드를 삭막하게 그렸다. 그의 인물들은 완전히 적나라한노출로 욕망과 성과 그로 인한 고통받는 인간상을 표현하다. 특히 작가 자신의 누드를 통해예민하고 상처받는 허무한 인간을 그렸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선묘가 두드러지는 점이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선이 색채보다 이상적으로 작품을 특징적으로 만들고 있다. 한편 코코슈카는 화단의 테러, 미친 코코슈카로 불리며 1908년 데뷔 부터 폭력적인, 성 , 남녀관계의 심리, 인간 영혼의 비극적 상태의 죽음을 주제로 작업했다. 그는 미술분아니라 연극에서도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의 그름은 신경질적인 가는 선과 내성적 분위기의 딱딱하고 선묘적인 초기시기를 거쳐 다리파 화가들과의 만남 이후 강렬한 색채와 질감에 점차 가미된다. 후이게는 완곡하고 자연을 노래하기도 하나 초기시기의 충격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분위기는 감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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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히너의
<군인으로 그려진 자화상>
키르히너의
<게르다, 반신의 초상>
키르히너의
<거리의 두여인>
키르히너의
<무도장에서>
에곤 쉴레의
<살인자, 여인들의 소망>
에곤 쉴레의 <연인>
에곤 쉴레의<앉아있는 커플>
에곤 쉴레의<가을나무>
에곤 쉴레의
<붉은 옷의 남자 누드>
에곤 쉴레의
<헤르바르트 발덴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