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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이중생활

keyword77 2005. 8. 24. 16:13
“김대리, 박과장은 사이버 이중생활중”
[문화일보 2005-08-24 14:17]

(::번지는 ‘온라인 두집살림’ 명암::)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K(여·29)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지방 국립대를 나와 사회 생활을 한 지 5년째. 미혼인 그는 은 행 대출을 받아 마련한 오피스텔 1채를 갖고 있고 대중교통을 이 용해 출퇴근한다. 3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는 내년쯤 결혼 할 예정.

 

그러나 K씨는 사이버 공간에서만큼은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유 명인’이다. 인기 온라인 게임 혈맹(血盟·여러 게이머가 힘을 합쳐 상대편과 싸우는 일종의 동맹)의 영주인 그는 300명이 넘는 회원을 이끄는 지도자다. 혈맹을 유지하기 위해 K씨가 게임에 쏟아붓는 시간은 하루 6시간.

 

 

퇴근과 동시에 시작되는 그의 ‘온 라인 생활’은 오프라인 못지않게 중요하다. K씨는 “현실의 나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을지 몰라도, 게임 속의 나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리더”라고 말했다.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전혀 다른 인격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 이중생 활’. 온라인에서는 성격은 물론, 성별과 나이까지도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한 유명 카메라 동호회는 회원들의 사진 도용 문제로 몸살 을 앓고 있다. 모 포털사이트의 블로거가 회원들의 사진을 ‘불 펌(온라인 상의 게시물을 허락없이 가져가는 행위)’해 마치 자 신의 작품인 양 게시했기 때문이다. 이 블로거는 50장이 넘는 회 원들의 사진을 몰래 가져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고 외국 유학 을 다녀온 사진 작가 행세를 했다.

 

 

그는 사진을 보고 감탄하는 다른 블로거들에게 친절하게 답글까 지 달아주는 등 철저한 ‘이중생활’을 해왔지만 결국 거짓임이 들통났다. 결국 이 블로그는 접속 차단 조치됐고, 원 저작자들은 이 블로거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다.

 

 

지난 1월에는 ‘연필 그림’으로 유명해진 한 네티즌이 ‘사기 소동’에 휘말리기도 했다. 유명 연예인들의 모습을 정밀 묘사한 연필 그림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려, ‘신기에 가까운 솜씨’ 라는 유명세를 치렀던 이 네티즌은 문제의 그림들이 이미지 보정 프로그램인 ‘포토샵’과 ‘페이터’를 이용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졸지에 사기꾼으로 몰렸다.

 

 

그는 “컴퓨터의 도움을 빌린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자신이 손 으로 그린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네티즌들은 그의 주장을 믿지 않았고, 결국 미니홈피는 폐쇄됐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장근영 선임연구원은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직장에서의 나’ 와 ‘가정에서의 나’가 다른 것처럼 인간은 다양한 자기 연출(self monitoring)을 하게 마련”이라면서 “자아라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규정하는 것이며, 현실의 나를 전 혀 모르는 사람으로 구성된 온라인 공동체에서의 자아가 현실 세 계의 자아와 판이하게 다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 다.

 

 

게임 전문가인 중앙대 상경학부 위정현 교수는 “온·오프라인에 서의 이중적인 삶은 이미 디지털 세대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라면서도 “지나치게 온라인에서의 삶에 치중해 오프라인의 삶을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 다”고 지적했다.

 

 

위 교수는 그러나 “현실의 자아와 전혀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라면서 “현실의 자신에 만 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취감을 통해 오히려 오프라인 생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 다”고 소개했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