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드 튀거나 짜릿하거나~
2006. 1. 4. 10:48ㆍ유머.기사.ETC
[조선일보 이석우, 오윤희 기자]
“휴대전화에 면도기를 달면 어떨까. 생긴 것도 비슷하잖아.” “중동 사람들은 매일 5번 메카를 향해서 기도하잖아. 휴대전화에 나침반을 달아 놓으면 어떨까.”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부 기획팀이 전 사원을 상대로 수집한 이색(異色) 아이디어다. 이 팀은 매주 한 번씩 전 직원이 보내온 기발한 아이디어를 모아 놓고 상품화 가능성을 고민한다. 이 중 나침반 휴대전화는 중동에서 실제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평범해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됐다. 뭘 하나 만들어 팔려 해도 기발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고 만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와 다른 나’를 추구하는 이색·엽기가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창업 시장에서도 이색·엽기 신드롬은 일반화됐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귀곡산장’은 매년 여름, ‘귀신 체험 이벤트’를 연다. 종업원 모두가 소복에 피칠을 한 채 음식을 나르고 손님들도 귀신 분장을 하고 밥을 먹는다. 박희경 사장은 “손님 반응이 너무 좋다. 귀신 이벤트를 할 땐 손님 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오로지 닭꼬치 하나만 팔던 가판대 꼬치 시장에서도 이색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꼬치 체인업체 ‘디긴’이 내놓은 ‘떡 먹은 돼지갈비 꼬치’는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디긴의 김두영 사장은 “가래떡에 돼지갈비 다진 것을 입혀 팔아 봤는데 1000원짜리 메뉴 하나가 가판대 하루 매출 10만원을 올려 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은 “소비자들이 먹는 행위까지도 이색적이고 엽기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 결과”라며 “이런 트렌드는 앞으로 더 세분화되고 작은 일상 속까지 파고들 것”이라고 말했다.

‘엽기적 상상력’은 미술계에도 파고들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예술작품이라고 하기 힘든 엽기적인 작품들이 미술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의 호응 속에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오는 8일까지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현대 미술의 문제작가 ‘매튜 바니’전(展)은 괴기스럽기까지하다. 영상작품인 ‘구속의 드로잉9’에는 매튜 바니와 그의 아내가 서로의 하반신을 고래잡이 칼로 잘라내는 장면이 있다. 잘라낸 하반신으로 고래 꼬리가 나오고 둘은 결국 고래로 변한다. 지난 11월 서울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린 ‘정복수’전에는 사지가 절단되고 내장이 드러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작품들이 전시됐다.
극단적인 취미생활을 추구하는 일반인들도 늘고 있다. 마라톤을 하더라도 100㎞를 넘게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사막이나 정글에서 200~300㎞를 달리는 ‘어드벤처 레이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김영민(29·직장인)씨는 얼마 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다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하고 깁스를 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손, 맨발로 고층건물을 오르거나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이런 엽기적인 스포츠를 ‘야마카시’라고 한다. 김씨는 “성공적으로 목표물을 건너뛰면 온몸이 짜릿해지는 쾌감이 온다”고 말했다. 그가 가입해 있는 ‘야마카시 코리아(cafe.daum.net/yamakasikorea)’라는 동아리 회원 수는 2만명이 넘는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오동근(17)군은 요새 ‘플로우랩’에 푹 빠져있다. 땅에서 타는 스노보드인 플로우랩은 경사진 아스팔트 길을 타고 내려오면 꼭 스키장에서 타는 스노보드처럼 속력이 난다. 오군은 “무릎을 심하게 다쳐서 두 달간 고생한 적이 있지만 비탈길을 내려올 때의 느낌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김정선 교수는 “이색과 극한의 짜릿함을 추구하는 추세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개성과 자유가 존중되는 열린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면서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뭔가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yep249.chosun.com])
(오윤희기자 oyounh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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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 면도기를 달면 어떨까. 생긴 것도 비슷하잖아.” “중동 사람들은 매일 5번 메카를 향해서 기도하잖아. 휴대전화에 나침반을 달아 놓으면 어떨까.”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부 기획팀이 전 사원을 상대로 수집한 이색(異色) 아이디어다. 이 팀은 매주 한 번씩 전 직원이 보내온 기발한 아이디어를 모아 놓고 상품화 가능성을 고민한다. 이 중 나침반 휴대전화는 중동에서 실제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평범해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됐다. 뭘 하나 만들어 팔려 해도 기발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고 만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와 다른 나’를 추구하는 이색·엽기가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창업 시장에서도 이색·엽기 신드롬은 일반화됐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귀곡산장’은 매년 여름, ‘귀신 체험 이벤트’를 연다. 종업원 모두가 소복에 피칠을 한 채 음식을 나르고 손님들도 귀신 분장을 하고 밥을 먹는다. 박희경 사장은 “손님 반응이 너무 좋다. 귀신 이벤트를 할 땐 손님 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오로지 닭꼬치 하나만 팔던 가판대 꼬치 시장에서도 이색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꼬치 체인업체 ‘디긴’이 내놓은 ‘떡 먹은 돼지갈비 꼬치’는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디긴의 김두영 사장은 “가래떡에 돼지갈비 다진 것을 입혀 팔아 봤는데 1000원짜리 메뉴 하나가 가판대 하루 매출 10만원을 올려 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은 “소비자들이 먹는 행위까지도 이색적이고 엽기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 결과”라며 “이런 트렌드는 앞으로 더 세분화되고 작은 일상 속까지 파고들 것”이라고 말했다.

‘엽기적 상상력’은 미술계에도 파고들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예술작품이라고 하기 힘든 엽기적인 작품들이 미술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의 호응 속에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오는 8일까지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현대 미술의 문제작가 ‘매튜 바니’전(展)은 괴기스럽기까지하다. 영상작품인 ‘구속의 드로잉9’에는 매튜 바니와 그의 아내가 서로의 하반신을 고래잡이 칼로 잘라내는 장면이 있다. 잘라낸 하반신으로 고래 꼬리가 나오고 둘은 결국 고래로 변한다. 지난 11월 서울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린 ‘정복수’전에는 사지가 절단되고 내장이 드러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작품들이 전시됐다.
극단적인 취미생활을 추구하는 일반인들도 늘고 있다. 마라톤을 하더라도 100㎞를 넘게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사막이나 정글에서 200~300㎞를 달리는 ‘어드벤처 레이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김영민(29·직장인)씨는 얼마 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다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하고 깁스를 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손, 맨발로 고층건물을 오르거나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이런 엽기적인 스포츠를 ‘야마카시’라고 한다. 김씨는 “성공적으로 목표물을 건너뛰면 온몸이 짜릿해지는 쾌감이 온다”고 말했다. 그가 가입해 있는 ‘야마카시 코리아(cafe.daum.net/yamakasikorea)’라는 동아리 회원 수는 2만명이 넘는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오동근(17)군은 요새 ‘플로우랩’에 푹 빠져있다. 땅에서 타는 스노보드인 플로우랩은 경사진 아스팔트 길을 타고 내려오면 꼭 스키장에서 타는 스노보드처럼 속력이 난다. 오군은 “무릎을 심하게 다쳐서 두 달간 고생한 적이 있지만 비탈길을 내려올 때의 느낌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김정선 교수는 “이색과 극한의 짜릿함을 추구하는 추세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개성과 자유가 존중되는 열린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면서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뭔가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yep249.chosun.com])
(오윤희기자 oyounh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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