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찬양뒤의 일본의 칼날

2006. 1. 10. 11:34유머.기사.ETC

 

 

 

 

“세계 최강의 기술력을 가진 일본이 두렵다.”

미국의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에 지난 2일 보도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이 한 말이다.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와 상대적으로 부진한 미국 경제를 대비시켜 일본 자본에 대한 두려움을 은연중 드러낸 대목이다. 미국에서 ‘일본 위협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2004년 하반기 무렵. 그러나 일본의 분석가들은 미국을 쓸데없이 자극하지 말고 조용히 하자고 촉구한다. 일본이 주요 자본과 기술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미국 기업들의 경계심을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이 자랑하는 자동차와 금융, 첨단기계 업종에서는 이미 일본 경계령이 내려진 지 오래다. 전 세계 자동차메이커 서열에서 만년 2위인 도요타자동차가 올해 상반기 안에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누를 것이란 뉴스가 지난해 말 일본 신문·잡지들을 장식했다. 도요타는 첨단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미국 땅에서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반면 GM은 파산설이 나돌 만큼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지난해 주가도 40% 이상 폭락했다.



게다가 일본은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60%, 공작기계의 30%, 금형기계의 40%를 공급하는 기술대국이다. 일본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은 미국보다 3년, 한국보다는 7년이나 앞서 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아직도 주요 부품의 50%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제조업은 그렇다치고 금융업은 어떤가. 금융기법과 전체 규모, 시장 점유에서 미국·영국에 뒤진다고 하지만 일본 자본가들은 소리 안 나게 미국 따라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4일부터 영업에 들어간 ‘미쓰비시 도쿄UFJ은행’은 씨티뱅크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산을 가진 은행으로 탄생했다. 미쓰비시 도쿄UFJ 금융그룹은 계좌 4000만개에 자산 193조엔(약 1900조원). 지금까지 세계 최대였던 미국의 씨티그룹(약 1100조원)을 압도하는 규모다. 조만간 미국의 거대 자본과 대결하기 위해 몸집을 키우는 하나의 실례다.

지난해 일본은 자본 유치 경쟁에서 미국을 제쳤다. 세계 투자자들은 일본 니케이평균주가가 지난해 1986년 이래 연간 최대 증가 폭인 40%를 기록했으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지난해 거의 변동 없이 장을 마쳤다. 올해 전 세계의 자본이 어디에 집중될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미국 자본’ 제압을 위한 ‘인고의 10년’을 보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반도체 부문 정상을 차지한 1986년, 그리고 도요타가 처음 GM을 누르고 정상에 올라서는 2006년. 그 ‘20년’의 시간 동안 일본은 미국의 투자 타이밍, 불황기의 극복 과정을 하나하나 복기(復棋)하며 허점을 파고들었다.

“미국 중심 외교는 일본 외교의 시작”이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미국 찬양’ 뒤에 숨어 있는 칼날 선 사무라이 정신. 그러나 미국은 새해 ‘진짜’ 경쟁 상대인 일본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도쿄=정승욱 특파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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