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와 정약용

2005. 6. 1. 09:12시와 에세이

세익스피어와 정약용

 

세익스피어는 1564년에 영국에서 태어났고, 다산 정약용은 그 200년 뒤인 1762년에 조선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세익스피어는 세계 연극사상 최대의 극작가이며 영국의 문학사를 장식하는 대시인이다. 18세기 이래 영국에서는 세익스피어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발전하였고 모든 비평원리의 선례로 이용되며, 극단에서는 세익스피어의 극이 배우의 등용문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정약용은 조선의 실학자이자 대사상가이며 철학자이고 탁월한 시인으로 추앙되며 1959년 홍이섭 교수의 명명이래 ‘다산학’이라는 학문분야로 분류되고 있지만, 학자들이나 연구자들만의 일이고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강의되거나 연구되지 않는 상태여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다.

세익스피어의 극작품으로는 4대 비극이 널리 알려져 영국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두루 보급되어 명작으로 수백 년이 지나도록 큰 명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영국 국민을 자랑스럽게 해주고 있다. 햄릿(1601), 오셀로(1604), 리어왕(1605), 맥베스(1606) 등이 이른바 4대 비극으로 만인을 울려주는 위대한 문학으로서의 자리를 든든하게 확보하고 있다.
 
                    <방대하고도 깊은 다산의 성과와 업적>

정약용의 저서는 5백 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모두 한문으로 기록된 책이어서 일반 독자들은 읽을 수도 없는데다, 번역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는데, 근래에 많은 번역이 이루어져서 이제야 다산학의 내용을 파악하면서 관심이 커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철학분야로 분류할 수 있는 경학(經學)관계 저술이 232권에 이르며, 이는 주자학(朱子學)의 경학논리를 대부분 뒤엎고 자기 나름의 새로운 경학체계를 이루어, 이른바 성리학의 논리에서 실학의 논리로 경(經)을 재해석하는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룩해냈다. 또 경세학(經世學) 분야로 분류되는 일표이서(一表二書), 즉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3대 저서는 나라를 경륜하고 천하국가를 통치할 방법과 제도를 마련한 저술로 그의 뛰어난 실학 사상을 알게 해주는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약용은 시인으로 2,500수가 넘는 탁월한 시를 지어 당대의 사회적 모순과 인민의 질곡을 여과없이 비판하고 풍자하여 참여시 및 사회시로 부류되는 대작들을 대량으로 저작해냈다. 강자들의 횡포에 한없이 분개하면서 약자들의 지위 부상을 위한 애절한 절규를 시에 담아 압제받는 인민들의 대변자적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정약용은 의약분야에도 깊숙한 연구를 통해 방대한 『마과회통』등 많은 의학서적을 저술하였고 <종두설>(種痘說)등을 저술하여 두질(痘疾)의 예방과 치료에 획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의료 시술의 길을 연 의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정약용은 현재에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수원 화성의 축조를 위해 설계도를 작성하고 축조기술을 설파한 『성설(城說)』을 저술하여 가장 견고하고 가장 아름다운 화성을 쌓는 데에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던 건축학자였다. 
 
정약용은 주교(舟橋), 즉 배다리라는 간이 교량을 설계하여 한강을 건너기 힘든 능행에 사용하여 정조가 화성을 자주 찾을 수 있는 공법을 개발하여 토목공학자로서의 지위도 얻을 수 있었다.
 
정약용은 36세부터 2년 가까이 황해도 곡산도호부사를 지냈다. 목민관, 즉 높은 지위의 공직자가 되어 목민술을 제대로 발휘하여 정치인으로서도 탁월한 능력과 수완을 떨쳐 인민들의 칭송이 자자했던 실천가였음도 잘 알려진 일이다. 
 
                 <세계적 인물은 그 나라 국민이 만든다>

세익스피어와 정약용이 시간적으로 200년의 차이가 있고, 태어난 나라의 위상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세익스피어는 세계적 인물로 모두가 숭배하는 인물인데 비해, 왜 정약용은 학문적 성과와 문학 등의 업적에 걸맞은 명성과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걸까.
 
잘 나가던 시절, 영국은 5대양 6대주에 두루 식민지를 두고 있어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라고 자랑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영국인들은 전 세계에 있는 식민지를 모두 잃더라도, 세익스피어 한 사람만 우리가 보존하면 영국의 긍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세익스피어를 영국의 자랑으로, 국민의 긍지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어떤가. 『목민심서』라는 그 민족의 자랑인 책을 구경도 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렇게 제 나라의 위인을 몰라보고 무시하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이 알아주고 세계에서 추앙하는 인물이 되겠는가.
 
세익스피어와 정약용, 세익스피어학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다산학은 한국에서도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않으니 합당한 것인가.
 
우리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도 세익스피어에 못지않은 다산을 세익스피어 이상으로 추켜세우고 싶지는 않는가고.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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