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봉준호

2013. 8. 2. 18:48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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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설국열차' 봉준호 "논란 예상했다, 단순·통쾌하게 봐 주길"

출처 enews24 | 입력 2013.08.02 11:12 | 수정 2013.08.02 14:56
[enews24 오미정 기자]

봉준호는 수많은 논란을 예상한듯 했다. 논란들에 대해 "그럴만도 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담담하게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라고 했다.

'설국열차'는 하나의 세계다. 봉준호가 창조한 디스토피아다. 암울하지만 꿈틀댄다. 그 안에 빈부의 차이가 있고,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혁명가가 있다. 혁명과 봉기, 타락과 위선도 모두 인간사의 일부라고 말하는 절대자도 존재한다.

열차 안 세상을 창조한 봉준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자못 심각한 영화를 들고 나왔지만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유쾌했다. 말재간이 뛰어난 봉준호 감독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영화에 대해 호평도 있고, 논란도 있다.

"개봉 전 '이 영화가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 말했는데 그런 것 같다. 다 좋다고 해도 이상하다. 논란이 있을만도 하다. 복잡한 면도 있는 영화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열차 속 세상이 묘하게 거대한 인간사를 담고 있다.

"'설국열차'의 주제는 심플하고 명확하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각 칸마다, 각 인물마다 미드 한 회차의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영화는 돌직구처럼 직진한다. 그냥 단순하게 통쾌한 느낌으로 영화를 봐 달라. 사회적 메시지도 있지만 사실 여느 SF 영화처럼 심플하고 당연한 얘기다. 나에게 이 영화는 직선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기차에도 시스템이 있지 않나. 인간들이 그 안에서 발버둥 친다.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벗어나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다. 극중 남궁민수(송강호)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각각 다른 비전으로 시스템을 벗어나려 한다. 역사는 그런 상황들이 반복된 것 아닌가. 그걸 단순하게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표현된 '기차'라는 세계에서의 액션 혈투극을 그린 것이다.(웃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소감이 어떤가.

"'괴물'이나, '살인의 추억' 등 내 전작들에서는 다 그 사회를 그리는 구체적인 좌표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독특해 진 것 같다. 사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다툼'을 그린 영화는 많았다.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 '스파르타쿠스' 시리즈, '엘리시움' 등 작품도 다 그런 주제인데, 단지 그걸 기차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흥분 속에 다룬 것 뿐이다. 어쨌든 즐거운 작업이었다. 한 사회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SF 장르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봉준호의 팬들은 이 영화가 낯설다고 한다.

"송강호와 고아성을 빼면 모든 것이 다 새로워서 그런가보다. 낯선것이 당연하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 낯섦을 즐겨달라."

-외국 배우들에 대한 얘기를 해 달라.

"윌포드 역의 에드 해리스 같은 경우, 기차 세트를 세팅한 후인 촬영 후반에 처음 만났다. 크랭크인할 때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스카이프로 얘기를 좀 하려고 PC를 연결했는데, 그 묵직한 목소리로 '우리집 컴퓨터가 안된다'고 전화가 왔다. 만나기 전엔 무서웠는데, 너무 상냥하고 소탈하다. 그 대배우가 첫날 촬영에서 긴장을 하더라. 외람된 표현이지만, 귀여우셨다."

-메이슨 역을 맡은 틸타 스윈튼 연기가 압권이라는 말이 많다.

"본인도 그 역할에 신이 많이 난 것 같았다. 정말 많이 얘기를 했다. 우리끼리의 설정은, 메이슨은 하층민에서 총리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신분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다. 그래서 더 과시적이다. 보란듯이 훈장을 달고, 각자의 자리를 강조한다. 역할을 이해한 틸다 스윈튼이 스스로 외모를 그렇게 만들고 요크셔 지방의 액센트로 연기했다. 나야 뭐 요크셔 지방 액센트가 어떤지 알지 못하지만 틸다 스윈튼의 설명에 의하면, 그 지역이 공업지대인데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하더라."

-크리스 에반스는 어땠나.

"너무 미국적이고, 전형적인 캐릭터라 걱정을 많이 했다. 치어리더 사귀는 미식축구부 선수 같은 이미지 아니었나. 영화를 본 게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밖에 없어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캐스팅 디렉터가 그게 다 편견이라고 하더라. 크리스 에반스가 큰 영화 사이에 인디 영화를 찍는다더라. 그래서 '펑쳐'라는 작품을 봤다. 거기서 그가 약에 찌든 변호사 역을 맡았다. 진지한 연기를 정말 잘 하더라. 실제로 만나보니 소탈했다. 30분씩 시간을 배정해 배우들을 만났는데, 자기 시간에 와서 미팅을 하더라. 이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듣고 '살인의 추억'과 '마더'도 보고 왔다. 송강호에 대해 관심도 많이 표시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 얼굴을 보니까 너무 예쁘고 속눈썹이 길었다. 근육질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커티스가 모든 것을 때려부수는 히어로가 아니지 않나. 점점 외로워지고 가여운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크리스 에반스가 그런 캐릭터를 좋아했다. 실제 성격도 섬세하다. 근육은 정말 돌덩어리 같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본인 영어 실력이 뛰어난가보다. 배우들과 그렇게 얘기를 많이 했으면.

"언제든지 주변에 통역이 있다. 난 '왼쪽' '오른쪽' '더 빨리 하세요', 뭐 그런 간단한 말만 한다.(웃음)

-송강호와 고아성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큰 것 같다. 특히 송강호.

"미국 배우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나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최소한의 비빌 언덕은 있어야 하지 않나.(웃음) 현장에서 송강호와 얘기 하는게 좋았다. 처음부터 이런 일이 닥쳐오지 않을까 싶어서 송강호, 고아성 두 사람에겐 시나리오가 시작될 때부터 얘기를 해 놨다. 나오는 신은 많지 않지만 오히려 재밌고 중요한 역할을 주고 싶었다."

-고아성의 극중 이름인 요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레비아탄(성경에 등장하는 괴물)에 삼켜졌다가 살아 돌아온다. 거기에서 차용한 이름인가.

"나도 성당을 가긴 한다. 사실 '괴물' 때 생각한 이름이다. '괴물'에서 송강호 선배가 괴물 입에서 고아성을 꺼내지 않나. 그걸 본 사람이, 고래 뱃속에서 요나를 꺼내는 성경 속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더라. 그리고 공교롭게도 고아성이 좋아하는 밴드가 네스티요나라고 하더라. 그래서 요나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외국 배우들과 함께, 우리로선 큰 자본을 들여 외국에서 촬영을 해야했는데,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난 2개월 28일을 강조하고 있다. 3개월 못되는 시간에 찍었다. 좋게 말하면 합리적인, 나쁘게 말하면 빠듯한 시간에 촬영을 하다보니 강도가 셌다. 한국에서 찍은 '마더'도 90회를 촬영했는데 그보다 적은 회차에 촬영해야 했으니. 나는 배우들과 촬영장에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를 많이 해 그런 빠듯한 시간에 맞춰 찍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빡빡하게 꽉 짜인 촬영 스케줄을 맞추는게 쉽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에서의 로케이션이 있긴 했지만, 약간의 로케이션을 빼고는 모두 체코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갱도에 가는 광부처럼 버스에 하나씩 하나씩 올라타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이 영화는 원작이 만화다. 처음 만화 '설국열차'를 볼 때 느낌은.

"눈발이 날리고 기차가 달리는 가운데, 거친 인간 군상이 있다. 그런 이미지와 느낌에 끌렸다. 유리창 안에 사람들이 있고, 밖에는 순백의 눈밭이 이어진다. 안쪽은 거칠고 야만적인 세계이고, 밖은 그냥 하얗다.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새로 써야 했지만, 그 느낌이 좋았다. 디테일은 내가 만들어냈지만, 원작이 준 위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서 그 위에 덧칠을 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에서 작품을 한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감독들과 고통을 나눴다고 들었다.

"나잇살들이나 먹은 남자들이 서로 카카오톡으로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다. 특히 미국에서 '스토커'를 찍은 박찬욱 감독님이 힘들었던 것 같다. 폭스 스튜디오가 많이 쪼았다고 하더라. 류승완 감독은 해외에 9개월이나 있었니까 힘들었을 것이다. 공항에서 류 감독을 만난 적이 있는데, 얼굴이 노랗더라. '괜찮냐'고 했더니 나도 만만치 않다고 하더라."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이 조언을 해줬나.

"제작자이기 이전에 선배로 수다 많이 떨긴 했다. 박 감독님은 연출자가 가장 편하게 제작을 하게 해 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폭스 스튜디오의 '쪼임'을 받았다. 나는 예산에 대해서만 얘기를 들었지, 내용에 대해 뭐라고 한 사람은 없었는데, 박 감독님은 폭스 스튜디오에서 내용과 의상까지 관여를 했다더라. '스토커' 일정 때문에 많이 만나진 못했는데, 촬영 막바지에 현장에 한번 오셨었다."

사진 = 김병관 기자

오미정 기자 omj0206@enews24.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