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김애자화가 - 교토의 풍경

2013. 10. 16. 23:37art

[일본 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재일교포 김애자(愛子) 화백

레이디경향 | 입력 2013.10.16 19:15

ㆍ자연을 화폭에 담아온 삶

'아이코 시리즈'는 옆 나라 일본에 살고 있는 아이코(愛子)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여성이란,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의 의미를 찾는 기획 기사다. 일본의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삶을 따라가보며 한국과의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번에는 '애자(愛子)'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며 한국 남원과 일본 교토의 풍경을 화폭에 담는 재일교포 김애자 화백을 만났다.



그림이 나를 선택해줬다


아이코 인터뷰 연재가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평범한 이들이 지면에 오르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인연이 있어 평범한 여인들 혹은 특출한 여인들을 만나왔고, 지면을 통해 소개할 수 있어 늘 고마웠다. 이번 호는 '아이코'가 아닌 '애자'로 불리길 희망하는 동포 화가를 소개한다. 양석일, 유미리와 같은 동포 문학가들은 일본에서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도 잘 알려졌지만, 동포 화가는 아무래도 좀 생소한 편이다. 일본에서 활약 중이며 한국에서도 그룹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여온 김애자(57) 화백은 1956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미 화가를 꿈꾸었다. 은은한 초록이 바탕이 된 부드러운 선으로 이어진 풍경화는 손을 뻗으면 펼쳐질 것처럼 친근감이 솟는다. 들에 피는 꽃처럼 자연과 어우러져 평생 그림과 함께 살겠다는 그녀를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굉장히 젊어 보이시네요?


1956년 5월 5일생이에요. 5월 5일생이 운세가 좋대요. 아세요?

아뇨, 몰랐어요. 운이 좋은 편인가요?


그럼요. 꿈에도 그리던 화가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요.

언제부터 화가를 꿈꾸었나요?

아주 어릴 적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이미 꿈으로 굳었어요. 그땐 주로 만화를 그렸고 초등학교 5, 6학년 때 선생님이 제 그림만 특별히 벽에 걸어주셨어요. 제게 자신감을 준 일이었죠.



NHK문화센터에서 지도 중(사진 위).
할아버지의 고향인 남원에서. 그녀는 그곳의 풍경을 담기 위해 종종 남원을 방문한다.


본격적으로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학창 시절엔 혼자서 그림을 그렸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민단(재일대한민국민단)에 취업을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취업한 지 4년 만에 갑자기 그림을 그려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간사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간사이미술원연구소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1901년에 조직된 서양화가들의 모임이 미술연구소가 된 곳이에요. 우메하라 류자부로, 니시카와 준 같은 화가들이 성장한 곳이죠.

스무 살이 좀 넘어서 시작하신 거군요. 회사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신 건가요?

매일 그리지 않으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호텔의 웨이트리스며 기모노 허리띠에 그림을 그리는 일도 했지요. 정신없이 바빴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아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어릴 적부터 꿈이었기에 그 꿈을 이루기까지는 힘들어도 노력할 수 있었어요.

화가가 된 건 언제인가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에요.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이미 화가예요. 일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저는 이미 제 자신을 화가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림이 절 선택해주었다고 믿어요. 30대 시절은 그림을 그리고 일도 하면서 매우 힘들게 보냈어요. 40대에 접어들면서 문하생을 얻을 수 있었고, 제 그림을 좋아해주는 팬이 생겨 이렇게 유지하고 있답니다.

어릴 적부터 화가를 꿈꾸어온 그녀는 마치 신내림을 받은 듯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리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 홀어머니는 화가가 되겠다는 그녀에게 불안정한 삶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면서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림이 자신을 선택해주었다면 거기에 응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자연에 동화되는 행복한 화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는 '고요전' 등의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해왔다. 인물이나 정물보다는 풍경화를 사랑한다. 특히 한국의 옛 풍경들이 그녀의 모티브다. 모든 풍경은 그녀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말해준다. 그리면서 풍경과 동화되라고. 은은한 초록이 부드럽게 묻어나는 풍경화와 짙은 흑색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친근하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우리네 옛 풍경이 그녀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로 한국의 모습을 그리는데 언제부터 한국 풍경을 그리셨나요?


20대 중반 시절부터요. 어머니 고향이 남원이에요. 외할아버지는 시인이셨어요. 남원 하면 '춘향전'이죠. 예부터 예술의 도시였어요. 외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예술적인 성향을 제가 물려받은 거 같아요.

특별히 자연을 주로 그리시는 이유가 있나요?

전에 남원에 갔을 때 그림을 그릴 여유가 이틀밖에 없었어요. 하루는 비가 와서 스케치하러 나가지 못했어요. 나머지 하루도 비가 내렸는데 나가봤죠. 그림을 그리니까 빗소리는 들렸는데 비는 느끼지 못했어요. 저만 빼놓고 나머지 풍경에만 비가 내리는 느낌이었어요. 정말 3시간 정도 저는 비를 맞지 않았어요. 매우 고요했죠. 세상과 과거와 미래까지 한 손에 넣은 그런 기분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늘과 하나가 된 마음으로. 자연을 원해서 그리는 면도 있지만, 자연이 제게 그림을 그리라고 말해줘요.

자연과 동화되며 그림을 그리신다는 말씀이군요.

자연을 그릴 수 있어서 행복해요. 이런 내게,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게 그림을 그리게 해줘서 고마워요. 경외의 마음을 갖게 되고, 감사하게 돼요. 교토에서도 눈 오는 날 그림을 그리러 나갔어요. 추운 줄도 모르고 그림을 그렸죠. 아니 정말 춥지 않았어요. 바람도 심했는데,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자연이 중심이 되고 저는 그 일부가 되면 마치 자연이 눈보라를 막아주는 그런 느낌이에요.

하루 몇 시간이나 그림을 그리세요?

4시간 정도요. 강도 높은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회사원이 근무하는 것처럼 내내 그림을 그리진 못해요. 여름엔 빛이 강해서 아침 4시부터 8시까지 주로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도 그리러 나가요. 새벽녘의 풍경은 환상적이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답니다.

김애자 화백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 느낀다. 그것은 오만과는 달리 겸허함이다.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해 고뇌하며, 그림에 매달리고 있다.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 그림이 좋았다고 말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후회할 것은 없다. 그림과 결혼을 한 것이고, 그림을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녀는 말한다. 자연은 아무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다양한 표정을 짓는 자연을 그녀의 눈으로, 손으로 재현해보고 싶다. 한국의 사라져가는 옛 정취를, 자신의 고향인 교토의 풍화되어가는 모습을 한 장 한 장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다. 따뜻하고 정겹던 그 옛 모습들을 남기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업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행복한 한국인


김애자 화백의 부모는 다섯 살 때 일본으로 건너왔다. 부모는 폐품 수집으로 세 아이를 키우다가 민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뒤엔 어머니 혼자 세 아이를 키워왔다. 그림을 그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왔다. 30대까진 생활이 어려웠지만, 40대가 되어선 그림 하나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고 여긴다.

김애자 화백의 작품집




제61회 고요전(2013) 출품작 '적설'.




제56회 고요전(2008) 이노우에상을 수상한 '눈 오는 날2'.




'온'. 한국 남원. 저녁밥 짓는 내음이 가득한 전통 부엌.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서.




제49회 고요전(2001) 고요회상을 수상한 '춘양'.




'추광'. 한국 남원. 민가의 닭장에 살고 있는 닭. 고향의 빛을 받고 선 닭을 보며 그 생명력에 한없는 경애를 표한다.




'숭'. 교토. 어두운 우사에서 연약한 다리로 선 송아지. 그 존재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본다.


'아이코'와 '애자', 어느 이름으로 살고 계신가요?

애자요.

일본 이름을 가져본 적은 없나요?

초등학교 땐 가네모토 아이코란 이름으로 일본 학교에 다녔어요.

차별을 받거나 하신 적이 있나요?

노골적인 차별은 아니지만,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래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불편했어요.

자신이 한국인이란 걸 아신 건 언제인가요?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중·고등학교는 교토의 한국 학교를 다녔어요. 얼마나 신나서 다녔는지 몰라요. 한국말도 배우고 본명을 사용했지요. 무엇보다 한국인이란 걸 감추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덜었죠. 그때부터 김애자란 이름으로 살아왔어요. 교토엔 한국 학교가 중·고등학교밖에 없어요.

자신이 한국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뒤의 기분은?

저는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한국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인이란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됐습니다. 우리 것이 좋아요. 제가 한국인이란 것도 자랑스럽고요.

현재 일본엔 한국 학교가 4곳이 있다. 재일동포와 나날이 증가하는 뉴커머를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숫자다. 도쿄나 교토, 오사카 이외의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한국 학교에 다니기를 포기하거나, 오랜 시간 통학하거나,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대부분은 포기를 하고 조총련 계열의 민족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그녀가 태어난 해, 1956년


그녀가 태어난 1956년은 남반구에서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멜버른 올림픽이 열렸다. 권투 종목에서 송순천 선수가 해방 후 처음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중동에선 수에즈운하를 둘러싸고 이집트,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 이집트와 이라크는 올림픽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고도성장으로 인한 병폐인 미나마타병 환자가 처음으로 발견된 해였다. 화학공장인 '칫소'가 바다에 폐기물을 버렸고, 폐수에 섞인 중금속이 바닷속 물고기를 오염시켰으며, 그 바다에서 난 어패류를 먹은 사람들에게서 뇌성마비, 운동실조, 청력장애, 언어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났다. 사망자까지 나타난 이 병은 공해병의 대명사가 됐다. 미나마타병이 발병한 해에 태어나서일까? 그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어 하고, 그 아름다움을 남기고 싶어 한다. 자신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언젠가 더 아름답게 그리리라 약속한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그림을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인이신 할아버지의 고향 역시 예술의 도시, 남원입니다. 저 역시 그 은혜로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믿어요. 제 뿌리에 감사하고 할아버지 뒤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간사이미술원연구소에서 서양미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선배인 우메하라 류자부로와 같은 화가의 뒤를 이을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습니다.

우메하라 류자부로(1888~1986)는 교토 출신의 화가로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서양화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강한 터치로 나체의 여인을 그린 '의자에 의한 나부'가 대표작이다. 김애자 화백은 우메하라처럼 강한 인상을 남기는 화가가 되길 꿈꾼다. 글, 그림, 노래. 이 분야의 사람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글을 써서 움직이려 하고, 누군가는 노래로, 누군가는 김애자 화백처럼 그림으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정규적인 미술 교육과정을 밟지는 않았지만, 붓을 든 그날부터 그녀는 화가였다. 자연이 그녀를 점지했고, 마치 신들린 듯 그림만 파고들었다. "그림과 음악은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사랑을 좇게 만든다"라는 그녀의 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 '현 위의 인생'에서 두 맹인은 음악으로 전쟁을 막는다.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에서 네로의 마지막 꿈은 루벤스의 그림을 단 한 번이라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이외수의 「벽오금학도」에선 그림 한 장이 병을 고치는가 하면, 이 세상과 신선 세상을 잇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피카소, 달리, 고흐, 고갱의 그림들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전시회가 열리면 줄을 서서 봐야 할 정도다. 훌륭한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제각기 의미를 남긴다. 김애자 화백은 자신의 고요한 그림 속에 평화를 심어두었다. 자연 속에 빠져들 여유를 그녀는 화폭 안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김 화백의 소원처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언제가 올 남북통일을 위해 그녀의 그림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따뜻함으로 널리 퍼지길 바란다. 한국에서도 그녀의 단독 개인전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기획 / 이유진 기자 ■글 / 김민정(일본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