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죽음

2004. 12. 25. 19:07전생, 윤회

죽음 그리고 삶

    

누구나 죽음과 삶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고 살고 있고(?), 본인또한 어려서부터 삶의 목적과 그 의미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그 누구도 답을 주지않았던 삶에 대한 맹목성

에 대하여 회의와 염세적 성향이 심했다.

그러다 나이 삼십넘어서 우연히 접하게 된 단전호흡서는 어떤 답이 있는듯보여서 한동안 심취도 했으나, 이론적으로 먼가 미심쩍게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 의혹에 대하여 읽기시작한 죽음.환생.전생 등의 서적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머릿속 정리만 하던중 한번 정리해보기로 하고 짜깁기식이나마 시도를 해본다.

     

우선 삶이란 왜 살아야하는가? 그 명제는 인간의 존재, 우리는 물질적인 대상으로서 자아를 생각하지만, 인간은 영.육.혼이 있다고 한다.

영적인것이나, 육체적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간간이 언급되는 분야이나, 대체적인 설명으로는 혼은 영혼불별의 존재라고 한다. 신과 마찬가지고 영혼불멸이나 신과 다른점은 열등한 영적상태의 에너지? 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란 영적진화를 위한 한 무대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인간의 혼은 그대로이되 연극배우가 한무대에서의 인격이, 다른 연극상영동안은 다른 인격처럼 행동을 하나, 그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기 다른무대를 살면서 각기 다른 배움의 장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것을 토대로 전생 (현생의 삶 이전의 삶)을 이야기하고, 현생의 죽음뒤의 다른 태어남이 환생이라고 본다.

삶과 삶사이는 바르도 (티벳사자의 서에 기술됨)라는 중간계가 있고, 또한 현생의 삶을 마감한 영혼이 다른 세계로 가지 않고, 현생에 머무르는 것을 이른바 귀신의 존재라고 본다.

그 다른세계로의 인도가 불교나 무속신앙서 말하는 “천도” 이고.

    

한국을 비롯한 동양계에서는 전생이나 환생에 대하여 불교나 토속신앙등의 영향으로 은연중 자연스러이 느끼는 점이나, 1980년대 전후로 서양서의 죽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특히 퇴행요법이나 임사체험등의 사례와 기존 불교적개념들이 도입되어서 주로 증명을 하는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거기에 한단계 더 뉴에이지적 사고로는 기존의 기독교적인 사고에서 영적인 존재에 대한 재조명이 되고 있다.

무속신앙들에서는 전생이 주로 KARMA (전생의 업보) 라는 것에 포인트가 맞추어져있으나,

그보다는 현생의 상태가 전생의 기억들이 많이 반영되고, 또 전생에 잘못을 개선키위해서 상황의 반대적반복을 하기도 한다는 지적하는 점들이 다른점으로 보여진다.

    

좀더 구체적 설명을 위해서는 밑받침되는 자료가 필요하나, 이번 글에서는 단지 본인의 기억속에 입력된 개념만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서양적개념으로도 과거 아틀란티스대륙에 대한 것, 그리고 에드가 케이시의 리딩을 사례로 드는데, 에드가 케이시는 기독교적인 사고를 하던 사람으로서 1930-40대의 수많은 리딩을 근거로 전생에 대한이야기와 아틀란티스대륙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1950년대 브라이드머피 사례를 인용하는데, 버지니아 티케라는 주부가 우울증 치료차 최면요법을 받던중 현생을 훌쩍넘어서 전세기에 아일랜드서 살았던 브라이드 머피라고주장을 한다. 버지니아 티케와 전혀다른 인격의 발언과 발음등으로 이야기한다. 그 살았다던 장소를 탐사중 실제 사실과 유사함이 증명된다. 서양학자들의 포인트는 주로 실제사례수집을 근거로 사후세계에 대한 설명이 우선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티벳의 환생과 더불은 티벳승들에 대한 책들을 접목하면 평소 우리가 황당하다고 말하는 부분까지 어렴풋 이해가 되려고도 한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중략하고, 차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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