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에 대한 사연들과 가난한 화가들의 삶

2005. 8. 6. 22:04art

 
혹시 해부학에 대해서 아시나요?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의학을 전공하거나  의사양반들의 전공과목이  아닐까 ?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라 봅니다

그러나
실은  해부학을 집대성 하고  완성시킨것은 어찌보면
화가들의 노력에 의해서 더 구체화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르네상스시대에는 해부학을 모르면
아주 몰 상식하고 무식한 화가 취급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은 늘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였죠  ^^
해부학 공부는 해야겠는데,
호주머니 사정은  안좋고,

그렇다고
벌이가 시원찮던 화가들 형편에  잘생긴 시신은 꿈도 못꾸고,

어쩌겠습니까?

말 그대로
안되면 되게 하라!!!  라는  우리네 군대 용어처럼
매일같이 새벽에 찬 이슬과 함께
삽들고 공동묘지에 출근도장을 찍어가며
쓸 만한 물건을 찾아다닐수 밖에 없었겠죠,,

“실비오 코르시니(1495∼1547)는
어느 날 밤 공동묘지에 가서
운좋게도
그 전날 교수형 당한 죄인의 시체를 파 와서 해부에 매달리며
예술과 학문의 갈증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파올로 귀도티(1560∼1629)는
해부학 연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고
돈이 없던 그 로선

밤마다  
시체에 굶주린 사람마냥
공동묘지를 둘러보면서 싱싱한 시체가 어디 없나?
이리저리  살피는건 일상적이 였고,,

어쩌다 운좋아서
이거다 싶은 대박을 발견하면 침 흘러가며
곧장 야삽들고 파낸 뒤
한적한 장소로 가져가서
해부 연구에 필요한 소묘작업를 하기도 했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때 당시
해부 장소로 기가 막힌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콜로세움의 맨 위층 이였습니다

떳떳치 못한 일이니만큼
보란 듯이
횃불을 환히 밝히고 작업도  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십중팔구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려서 작업에 들어갔을 텐데,

구멍 숭숭 뚫린 콜로세움의 으스스한 폐허 꼭대기에서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숫돌에 칼날을 갈고 있는 화가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어째,,
오늘밤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지 않습니까?    ^^*

유명한 미켈란젤로도
교교한 달빛아래  숫돌을 갈았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워낙에 많은 시신을  파헤쳐서
로마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ㅎㅎ

문제가 커지자
교황의 질타와 더불어  자중해 줄것을  명령 받았으나

레오나르도는 그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을 낮 삼아 열심히 돌아 댕겼습니다

그 결과
시신 30여 구를 낱낱이 분해해서
무려 779점의 해부학 소묘를 남긴 이 분야의 최고자로 등극되는
영광을 안기도 합니다

어째거나
그 시절
북유럽 화가들도 배움에 목마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령 1590년 할렘을 떠나
1591년 초 로마에 도착한
홀란드의 동판화가 헨드리크 홀치우스(1558∼1617)는
길거리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면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무릎을 칠 정도였으니까요..

“그 당시 이탈리아에는
기아가 창궐해서 시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던 때라,,
길거리마다 굶어죽고
기진해서 죽은 시신들이 즐비했기도 했던 시절이기도 했죠..

시체들을 보고 입맛을 다시다니,,, 거 참~

상상이 가십니까?  여러분 ^^*

두번째 이야기(밑으로)
 
그리고 그 시절엔
그넘에 가난은 지지리 궁상처럼
화가들의 대명사로 늘 따라 다녔던 수식어 였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별반 달라진것 없이 화가들은
지금도 가난에 익숙해져 살고있지만,,

그 당시 화가들은 그림만 그려서는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간판, 깃발, 문장, 벽화는 기본이고,
축제 행렬이나
잔칫집에 쓸 이벤트 소품과
결혼식 함 그림과 관 장식,
나무로 깎은 후추통 그림까지 온갖 잡다한 일들을 도 맡아 했었죠

또 대부분의 화가 공방에서는
무늬만 화가 공방이지,
공방 한쪽에다 도가니를 짓고
끌로 긁어 대는 소리,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왜냐구요?  ^^

교회 첨탑에 매달 쇠종을 구웠다 가도
전쟁이 터지면
다시 녹여서 대포를 만들던 시대였거든요  ㅎㅎ
재활용의 진수를 보여주던 시대였죠  ^^

어째튼간에~~
화가들은 찌그러진 주전자 뚜껑까지
일감이 들어오는 대로~
군소리 없이 뚝딱 해치워야
실력 있다는  소리을 들었던 시절이였습니다

솔찍히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궁정 화가도
사실 껍데기만 요란했지,,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른게 없었습니다

의전 행사나 축제가 있을 때마다
의상코디와 디자인,
무대장치와 연극 연출까지 맡았고.
가령 피카소가  무대 디자인에 샛눈을 판 것은
어찌보면?
궁정의 축제 이벤트 담당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흉내냈을 가능성이 크기도 합니다  ^^

하여튼 간에
이런 궁상속에 살다보니
화가들은
처녀들 맞선 대상자로선~

기피 영순위였습니다  

잘 나가던
르네상스 삼대 거장으로 꼽히던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하나같이 총각귀신으로 죽은 것만 보아도
대강 그때 사정을 알 만하실겁니다

제법 이름깨나 날리던 화가들도
추위에 헐벗고 끼니마저 거르며 며칠씩 지새우기 일쑤였거든요

오죽했으면
옷 살돈이 없어서
옷가지도 안 걸친 채 작업에 전념했던 “마사초(1401∼1429)조차도
‘미친 인간’ 이라는 뜻에서
사람들이  마사초’라고 불러겠습니까?    거.참

그래두 그시절에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1450?∼1523)는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라
자취비와 난방비를 절약하느라
몸에 딱 맞는 맞춤형 나무 상자를 짜놓고
그 안에 들어가 잤다고도  합니다
페루지노는 결국 구두쇠 생활로
착실하게 목돈을 모아서
늘그막에
따끈한 처녀 장가를 가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분 딱 한사람 빼곤
없는것 같습니다  ㅎㅎ

이글을 요약한다면  해답은 무엇이겠습니까?  ^^

이상과 현실은
" 합칠수 없는  철로같다라고  할수도 있겠고,,

예술의 길은 험난하다 라고  요약할수도 있겠죠 ^^

해답은..
여러분들의 가슴에 있습니다

산다는것
성취한다는것
삶의 목적의식이 있다는것
꿈을 이룬다는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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